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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 윌리엄 스타이그

by kxsnxjxm 2024. 12. 15.

 

12쪽

저기 저 오른쪽 길로 가면 아무것도 없어. 신기한 일도, 모험도, 놀랄 일도, 발견할 것도, 감탄할 것도 없지. 심지어 주변 경치마저 따분할 걸세. 결국 자네는 얼마 안 가 자기 안으로만 깊숙이 파고들게 될 거야. 벌건 대낮에도 헛한 꿈이나 꾸고, 꼬리나 흔들고, 멍하고 게을러져서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도 다 잊어버리고는 긴 시간 동안 늘어지게 잠만 자면서 지독히 따분해할 걸게. 그뿐인 줄 아나? 얼마쯤 가다 보면 길이 막혀서 그 지루한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와야 한다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말이야.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은 한심하게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는 거야.

 

22쪽

사실 이 악당들은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못되게 구는 것만 좋아했지요. 못된 짓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으니까요.

 

51쪽

바살러뮤 오소리 노인은 사라졌습니다. 추억만 남아 있을 뿐, 노인의 순서는 끝났습니다. 도미니크의 차례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한편, 아직 존재조차 하지 않는 생명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언젠가는 태어날 테고, 세계는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겠지요. 중요한 삶을 사는 이도 있을 테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이도 있을 테지요.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금 도미니크가 하듯 삶을 한 번쯤 성찰하겠지요. 그때가 오면 그들의 차례가 되고 도미니크의 차례는 아마 끝났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은 현재인 과거에 대해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미래인 그들의 현재에 대해 사색할 것입니다.

 

53쪽

복받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산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슬픔이 북받쳐 오를 때면 아름다움이 흐려지지만 슬픔이 가시면 다시 나타나겠지요. 그렇게 보면 아름다움과 슬픔은 너무나 다른데도 불구하고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았습니다.

 

84쪽

레뮤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차피 걷는 걸 미치도록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는 더더욱 걷고 싶지 않았습니다. 레뮤얼은 온종일 한곳에만 가만히 머무르는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생각도, 의문도 없이 그저 멍하니요.

 

120쪽

거기에 관해선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얻은 답은 이거예요. 세상이 눈에 덮이면 선생은 나뭇잎을 볼 수 있소? 황량한 한겨울에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선생은 내 그림에 핀 수선화를 보고 봄이라는 계절이 정말로 있다는 것과 반드시 다시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거요. 또,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있을 땐 이 맨프레드 사자가 그린 서늘한 겨울 풍경을 보고 기운을 얻을 거요. 내가 그린 초상화를 보며 곁에 없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